태안군지 - 민족의 형성과 고조선

민족의 형성과 고조선

우리 한반도에 최초의 부족 국가인 고조선(古朝鮮)이 성립되는 것은 청동기 문화가 발달하여 가는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때는 대륙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로 이주하여 오는 시기로서 이에 따라 철기 문화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것이다.

이 같은 철기 문화의 보급과 더불어 전국 각지에 많은 부족 국가의 성립을 보게 되는데, 부여(扶餘)·고구려(高句麗)·옥저(沃沮)·동예(東濊)·등이 그것이다.

이들 부족들은 농경지를 개척하여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켜 나가는 동시에, 씨족 공동체를 강화하여 마침내 부족 연맹체로 결속하면서 점진적으로 고대 국가(古代國家 )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부족 국가인 고조선이, 기원전 4세기 중국의 춘추 시대에는 남만주(南滿洲)와 한반도를 판도로 하는 이른바 동방 사회의 으뜸 세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판도에 자리한 고조선은 한때 요하강(遼河江)을 경계로 연(燕)나라와 대치할 만큼 그 세력이 강대했으나, 결국은 연나라의 침입으로 인하여 요동 지방을 빼앗기면서부터 불행하게도 고조선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조선은 일찍부터 사회 기강을 확립시키고 발전을 꾀하기 위해 8조금법(八條禁法)을 제정하여 실시하였는데, 오늘날 그 전모는 알 수 없으나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 3개 조문만 전해지고 있다. 이 3개조의 내용을 보면

  • 사람을 죽인자는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한다. (相殺以當時償殺)
  • 사람을 상해(傷害) 한 자는 곡물로써 보상한다. (想像以穀償)
  • 남의 물건을 훔친자가 남자면 종(家奴)으로 삼고 여자면 하녀(婢)가 되는데, 속죄하는 자는 50만전을 내야 한다. (相盜者男沒入爲其家奴女子爲婢欲自贖者人五十萬.......)

이와 같이 8개 조문 중에서 현재 3개 조문밖에 전래되지 않아 당시의 사회상 전모를 알 수는 없으나, 이 3개 조문을 통하여 부분적인 고조선의 사회상을 살펴본다면

  • 첫째 : 강도 높은 금법이 제정되었음을 볼 때, 강절도(强竊盜)가 횡행(橫行)하는 혼란한 사회였음을 엿볼 수 있으며.
  • 둘째 : 농업이 발전해 가는 사회.
  • 셋째 : 노예를 부리는 계급 사회.
  • 넷째 : 사유 재산이 인정되고 있는 사회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