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산고인돌군은 태안읍 장산리(泰安郡 長山里)의 안홍백씨 집 뒷산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고인돌군은 7기가 동향(東向)의 경사진 구릉지에 나란히 놓여 있는데, 지석(支石)이 없이 개석(蓋石)이 약 1/3정도 땅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일반인이 보아서는 자연석으로 오인(誤認)할 가능성이 짙다.
이곳을 찾은 것은 이미 19여년 전인 1976년의 8월이었다.
이곳을 답사한 동기는 당시 장산리에 거주하던 이종문 교사의 안내를 받은 것인데, 이곳에 칠성바위(七星岩)가 있어 주민들이 이 바위에 고사를 지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정월 보름날 저녁이면 동네 부인들이 앞다투어 이곳을 찾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와서는 이같은 행사도 사라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이같은 내용에 호기심이 생겨 현지를 답사 하였는데, 즉석에서 고인돌임을 느낄 수 있었다. 7개의 돌 중에서 제일 아래쪽에 있는 것이 가장 큰 돌이었는데, 개석(蓋石) 밑에 지석(支石)이 나와 있어 인공(人工)이 가해졌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이 고인돌은 다른 6개와는 달리 발굴한 흔적이 엿보였으므로 안홍백씨에게 물어봤더니 과거 일인(日本人)들이 발굴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으나 돌 밑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것이 고인돌인 줄은 모르고 7개의 돌이 놓여 있으니 편의상 칠성바위(七星岩)라고 부르고 따라서 이를 신앙했던 것이다.
이 고남리지석묘는 고남면 고남리(古南面 古南里)3구의 도로변에 있다. 안남중학교에서 영목행 도로를 따라 약 1㎞ 쯤 가다 보면 고남리 3구의 도로 왼쪽에 버스승강장 표지판이 보이는데, 이 표지판 바로 옆에 큰 돌이 하나 놓여 있다.
이 돌을 고인돌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단정(斷定)하기 어려웠다. 돌의 크기는 가로 90cm, 세로 1m, 두께 80cm로서 비교적 둥근 돌인데, 도로쪽으로 향한 부문이 단면(斷面)으로 평평하게 되어 있어 인공이 가해진 느낌이었다.
이 돌의 생김새나 규모 그리고 현지의 입지 조건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를 지석묘라고 부르기는 좀 성급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도로 확장 공사에 참가 했다는 주민의 말에 따르면, 도로를 확장하기 전에 이곳에 5·6개의 큰 돌이 있었는테, 모두 제거되고 현재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으나, 본래 지석묘였다는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 약 200미터쯤 떨어진 길가에 83세 된 강씨 노인이 살고 있는데, 이 촌로(村老)의 말에 따르면 고인돌이란 말은 들은적 없으나, 이 돌이 장군바위란 명칭으로 불리워졌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지게를 지고 이 돌 앞을 지날 때는 언제나 잠깐 멈추었다가 지나가곤 하였으므로 그 이유를 물으니, 이 돌은 예삿돌이 아니라 장군바위인데, 이 바위에 빌면 소원 성취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빌었다는 이야기를 자기 아버지로부터 들었다는 것이다.
이같이 길가에 덩그렇게 놓여 있는 한 개의 돌이 고인돌 또는 장군바위라고 불리워지고 있는데, 여러 각도에서 살펴본 결과 이를 고인돌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급한 단정인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이 고남 지역에서 고인돌이 발견될 가능성은 매우 짙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